91년 5월, 죽음의 배후
    분류코드   Ft0036
    자료형태   비디오테잎
    분량   
    언어   한국어
    제작   홍상운
    프로그램명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하위분류   TV
    제작일   2002년 04월 28일
 
내용
2002년 4월 28일(일) / 제58회
<91년 5월 죽음의 배후>

1991년 5월!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분신은 모두 11건!!
"공안정국 타도, 노태우정권 퇴진"을 외치며 쓰러져간 11명의 분신은 과연 어둠의 세력의 사주인자, 순수한 민주화의 열망인가?
김지하 시인, 박홍신부의 발언으로 의혹을 더 했던 죽음의 배후설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으로 실체를 드러낸 듯하지만 당시 강기훈은 공판 내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죄목으로 강기훈은 3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지내야만 했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라 불릴 만큼 대립에 반전을 거듭했던 유서대필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2002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대미를 장식하는 "91년 5월, 죽음의 배후"에서 유서대필공방의 진실과 공안정국의 실상을 파헤친다.

분신정국, 어둠의 배후세력은 누구인가?
강경대의 죽음으로 촉발된 91년 5월 투쟁은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등 대학생과 가정주부, 노동자자들이 잇달아 분신함으로써 '분신정국'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까지 번지게 된다.
우연이라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언론과 죽음으로써밖에 현 정권에 항거할 수 없다는 분신자들의 절박한 외침 속에서 연이어 일어나낫던 분신은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런데 분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의혹들이 일기 시작한다.
"분신을 위한 자살조가 조직되어 있다"던가 "제비뽑기로 분신을 정한다." 등 분신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내용이 제기된 것이다. 이는 김지하의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와 박홍신부의 '어둠의 배후세력' 발언이 나오면서 차츰 구체화되기 시작하고 검찰은 곧 수사에 착수한다. 검찰이 주장하는 분신의 배후는 누구였을까? 전직 내무부장관 이상연이 회고하는 당시의 정부측 입장을 들어본다.
그리고 당시 배후설에 대한 수사에 안기부도 적극 나섰는데 그 실례로 안동대생 김영균 학생의 배후로 지목된 김구일씨는 안기부에 끌려가 20일동안이나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결국 단순한 대자보의 초안을 유서로 오인한 것으로 혐의없음으로 끝났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았고, 자칫 잘못하면 어둠의 배후가 될 수도 있었던 당시의 상황을 김구일씨의 생생한 증언으로 들어본다.

강기훈 유서대필
91년 5월 뜨겁게 달궜던 '강기훈 유서대필공방'은 당시 운동권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줬다.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의 자살을 동료 강기훈이 방조하고 유서를 대필했다는 검찰측의 주장이 '어둠의 세력'의 사주에 의한 자사이라는 여론을 확산시킨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어둠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받았던 강기훈은 현재까지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데...
논란이 되고 있는 이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문서감정이다. 당시 문서감정을 담당했던 김형영이 다른 사건의 감정과 관련해서 뇌물을 받고 허위감정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뇌물은 받았지만 문서감정만은 확실히 했다고 주장하던 김형영은 11년이 지금 그날의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또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다른 감정사들은 왜 진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는가?
당시 김기설의 아버지 김정열씨는 법정에서 유서는 아들의 글씨가 아니라고 주장해 판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취재진이 만난 김정열씨는 지금은 강기훈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그 날의 증언을 번복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는 당시 판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유서를 포함한 여러 문서들을 국내를 비롯한 일본과 미국의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했고 그 중요한 감정결과가 나왔다.
과연 유서대필 공방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리고 91년 5월 분신정국의 배후는 누구인가?
제58회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그날의 진실을 파헤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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