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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일보는 왜 용공으로 몰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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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코드 | Pc0446 |
| 자료형태 | A4복사 |
| 페이지 | 7 |
| 언어 | 한국어 |
| 필자 | 편집부 |
| 잡지 | 말 |
| 하위분류 | 시사·교양지 |
| 발행일 | 1988년 0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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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 4·19 후 오랫동안 억눌렸던 언론의 자유가 개방되면서 각처에서 갖가지 신문·통신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언론계의 변화중 가장 큰 변화의 하나는 혁신계세력을 대변하는 민족일보의 출현이라 할 것이다. 민족일보는 발간전부터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1961년 2월 13일 창간되 이래 장면 내각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5·16 쿠데타로 폐간될 때까지 모두 91호의 신문을 제작하였다. 발행인 조용수씨에게 사형이 집행되는 등 한국현대언론사의 초대의 필화사건으로 기록되는 민족일보 사건은 그러나 아직 그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최근 한겨레신문 등 새로운 신문이 탄생하고 언론계가 변화하는 시점에서 민족일보 사건을 재검토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발행인 사형등 최대 필화사건
혁신계 통합. 진보이념 내세워
제2공화국 언론탄압 제1호
발행인 사형 등 중형 선고
통일논의 백화제방 선도역 맡아
북한주장 비판하는 논조 펴기도
민간차원 통일논의 담아낼 언론 출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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