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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 : 보도국장
참조 : 보도부장
제목 : 남북합의서 발효에 즈음한 국가보안법 철폐촉구서명
1. 우리는 남과 북 사이에 체결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이번 2월 19일을 기해 공식적으로 그 효력을 발생하게 되는 것을 맞이하여 먼저 남북 600만 겨레와 더불어 커다란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동이켜보면 남북이 나눠진 지난 50여년 세월은 우리 민족 5000년 역사에서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상호간에 증오를 심어주고 민족구성워 개개인에게 엄청난 고난을 강요한 질곡의 시대였다.
이제 이번 남북합의서가 그 효력을 발생하게 됨으로써 바야흐로 이러한 분단시대가 가고 통일의 시대가 성큼 우리 앞에 다가선듯도 하다.
2.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난 1972년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온 겨레 앞에 엄숙히 선언하였던 이른바 7.4남북공동성명이 결국 이를 열렬히 환호하던 남북겨레의 간절한 기대와 염원을 저버리고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전락하여 한낱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쓰라린 과거를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번의 남북합의서가 과거 7.4공동성명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 어느쪽의 정권 담당자에 의해 언제나 번복될 수도 있는 단순한 선언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남북한 내에서 법적, 정치적 효력을 가지는 법규범으로 위치지워져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은 이미 유엔에 동시가입함으로써 국제법상 국제사회에서 각기 하나의 독립주권 국가로 공인된 바 있으며 통일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이러한 남북당사간의 합의서는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 결코 아니며 대외적으로는 조약으로 대내적으로는 남북한 내에서 정부와 국민을 규율하는 국내법적 효력을 지니는 규범으로 해석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법리이다. 아울러 이번 합의서로 시작된 남북의 통일노력은 그 구성원인 국민 개개인의 삶과 권리·의무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므로 민주주의의 원리상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함 역시 당연한 결론인 것이다. 우리 헌법도 제60조 제1항에서 국가나 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의 경우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여 이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남북합의서를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비준 동의토록 하는 절차를 밟거나 또는 정부가 합의서 실천을 국민에게 책임지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적 구속력을 갖는 결의를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남북합의서는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나 강령이 아니고 정부와 국민을 구속하는 구체적 법규범으므로 이에 저촉되는 국내법의 정비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시굽한 과제이다.
그 중에서도 지난 1948년 제정 이래 45년여동안 민족분단을 조장·심화시키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며 독재 정권유지를 위한 반대자 탄압수단으로 두루 구 악역을 다해 온 국가보안법은 남북합의서가 발효됨으로 인하여 더 이상 법규범으로서의 효력을 상실하였다. 따라서 국회는 국가보안법을 즉각 완전 폐지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남북합의서 제2조는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므로 직업적 양심에 충실한 법조인이라면 더 이상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고 기소를 하거나 유죄선고를 할 수 없음도 법적으로 명백하다.
이처럼 남과 북이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비방, 중상이나 파괴 전복하려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기로 굳게 합의하고 그 합의가 효력을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존치시켜 북한을 체제전복 노리는 반국가단체로 보고 국민들에 대한 처벌을 계속한다면 이로 인해 우리 법 질서가 근본에서부터 파괴되는 것인 동시에 현 정부에 진정으로 분단을 청산하고 민족통일을 이루려는 의지가 전혀 없고 남북문제를 과거 7.4공동성명 때처럼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잇다고 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는 결국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커다란 저항을 불러 일으키고 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이에 덧붙여 국가보안법을 부분적으로 개정하거나 대체입법을 하여 북한에 대한 적대관계를 다소 완화하되 민주질서 수호라는 미명하에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을 억누르려 한다면 이러한 시도 또한 남북 분당의 청산, 민족의 화해라는 합의서의 기본 정신 및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의 원리에 크게 벗어나는 것이므로 이러한 대체입법 의도 역시 철저히 포기되어야 할 것이다.
4. 이제 우리 6,000만 겨레는 적대와 동족상잔 그리고 엄혹한 냉전의 논리로부터 벗어나 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향한 어려운 여정을 막 시작하려 하고 있다. 이 어려운 한걸음 한걸음이 종국에 영광의 목적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그 첫걸음이 바로 남북합의서의 실질적 이행인 것이고 이를 위해 현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즉각 철폐하고 남북합의서를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법적 규범으로 확인해 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는 바이다.
1992. 2. 18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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