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이 해를 보내면서-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석방을 촉구한다
    분류코드   Et0018
    자료형태   B5복사
    페이지   4
    언어   한국어
    저자   
    출처   민변
    하위분류   none
    발행일   1991년 12월 30일
 
□ 첨부파일 :  et0018.hwp
내용
이 해를 보내면서
-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 석방을 촉구한다. -

한 해를 되돌아 보며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황을 생각하면 암울하고 비통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 몇해 동안 국제정세가 조국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우리 내부에서도 통일운동의 열기가 확산된 결과로 더욱이 작년 후반기에 이룩된 독일의 통일을 바라보면서 우리 국민 모두는 통일에 대한 기대로 적지 않게 흥분하였다. 이에 따라 올해에도 남북정부가 초진한 대화와 여러 계층의 민간인들 사이에 이루어진 교류의 진전 여부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한편, 통일에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보여지는 갖가지 법규들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문제와 각종 인권 문제 역시 주요한 관심사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올 가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였고 이에 대하여는 분단을 고착화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도 있기는 하지만 온 국민은 이를 계기로 반세기에 가까운 우리민족의 대립과 반목의 역사가 멈추고 화해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이어 12월 13일 고위급 회담에서 남과 북의 정부가 서로의 체제룰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며 통일을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의 합의에 이른 것은 뒤늦은 감이 있으나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통일과 관련하여 이같은 성과가 있었음에도 우리 내부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인권을 신장하며 통일의 기반을 만드는 문제에 대하여는 우리는 국민의 기대와 정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아야 했다. 청와대까지 연루된 수서비리 사건과 국민에게 음료를 판매해온 재벌기업에 의하여 저질러진 낙동가 페놀 오염사건으로 정권과 재벌기업의 부도덕함이 여실히 드러났으며 그동안 쌓여온 이들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이 사건들은 국민의 정치 경제생활과 환경 및 건강에 대하여 심각한 위협을 가한 것이었으니 만큼 정부는 그 진상과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여 국민의 의록을 풀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여야 했다. 그러나 몇몇 관련자만 구속되었거나 벌금형에 처하여졌을 뿐 이 사건들의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도리어 수서사건의 주범 중 하나인 정태수씨는 곧 석방되어 정부비호의 의혹이 짙은 가운데 그에게 갖가지 금융혜택이 집중되었고 페놀오염이 발생한 지 몇 달 뒤 다시 낙동강에 페놀이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 뿐만 아니라 비판세력이 주최하려는 거의 모든 집회와 시위를 원천봉쇄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시위 중이던 학생을 경찰이 쇠파이프로 구타해 숨지게 하고 적법한 시위 해산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 최루탄을 난사하며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 학생이 압사하는 등 공권력의 남용이 극에 이르렀다. 심지어 시위와 관련없는 대학원 학생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기까지 하였다. 이같은 공권력의 남용을 규탄하고 성토하는 국민들의 의사표시가 5월 한달동안 연인권 100여만명이 참가하는 집회와 시위로 이어졌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남북한의 유엔가입과 남북합의서의 서명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사실살 수십년 전 모습대로 남아 사상 및 표현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는 권리를 비롯하여 갖가지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고 수많은 민주인사와 근로대중을 탄압하였다.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권조차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노동 관련 법규들도 그대로 남아 있다. 올해 한국이 국제노동기구에 가입하였지만 정부는 국제적 수준에 걸맞게 법을 개정하겠다는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제3자개입금지라는 희대의 악법에 의하여 구속되어 있던 노동조합 위원장이 공권력 개입의혹이 있는 상황에서 의문의 죽음에 이르렀음에도 그 진상이 가려지지 못하였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운동은 기업과 정부에 의해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탄압되었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정부의 억압적 태도는 국민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역사상 가장 많은 양심수를 생기게 하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양심수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자세로 일관해 왔으며 마침내 경찰의 고문과 폭력행사로 귀한 자식을 여윈 이들을 구속, 처벌하는 극안한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암울한 현실에 대하여 어느 다른 국가기관보다도 큰 책임이 검찰, 법원 및 헌법재판소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정치권력의 충직한 하수인으로 전락한 검찰에 대하여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다. 법원 역시 적어도 시국관련 사건에 있어서는 증거재판주의나 죄형법정주의 등 민주 국가의 사법부가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원칙을 내던지고 공안당국이 자행하는 법률의 남용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떨칠 r수 없다. 학술 논문을 문제 삼은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사건 등 거의 모든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보여진 지나치게 광범위한 범죄 인정 관행은 물론이고 수만면이 참가한 5월의 집회와 시위에 대한 진압과정에서 일어난 전경들의 부상에 대한 형사집행을 그것으 주최한 국민회의 관계자들에게 거의 무차별적으로 지운 데에서 보여진 공범 개념의 무한한 확대 적용 및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에서 법원 스스로 확신이 없음을 토로하면서도 유죄를 선고한 것에서 보여진 증거재판주의의 포기 등의 사례가 우리의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법원은 형의 약정에 있어서도 독립성을 잃고 형평에 심히 어긋나는 자세를 보인 것으로 생각된다. 시국사건에서 검찰의 구형량만 알게 되면 법원이선고할 형량을 거의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음이 현 실정이다. 총리 형량을 선고하는 것이 법원이 가진 형평 감각이다. 헌법재판소도, 시립학교 교원의 노동3권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사립학교법의 규정을 합헌이라고 판정함으로써 헌법의 명문 규정을 정면으로 무시한 예에서 명백히 드러난 것처럼 국민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한 해 동안 정부가 보인 이상과 같은 자세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남북합의서의 서명을 온 국민과 함께 충심으로 환영하면서도 그것이 과거 7.4공동성명의 경우처럼 정권의 무능함과 부도덕함을 은폐하고 정권을 연장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리의 우려는 정부가 그 동안 보여온 구태의연한 자세를 버리고 획기적인 민주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불식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정부는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실질적이고도 확실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 동안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으며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되어 왔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남침위협이 상존하고 있다는 구실 아해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총리 사이에 합의서가 채택된 마당에 이 법을 존치해야 할 어떠한 명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노동자의 권리를 기본적으로 침해하고 있는 노동관계법의 규정 등 민주주의의 원리에 어긋나는 모든 법률은 즉시 폐지되거나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 리고 그러한 법률에 의하여, 또한 그 밖의 법률을 남용한 결과 구속된 정치범들은 석방되고 사면 복권되어야 할 것이다.
묵은 해가 가고 이제 새해가 오려 한다. 물고문과 전기고문의 김근태씨는 여전히 차가운 감방에 수용되어 있는데 박종철군을 고문살해한 공범 중의 하나인 반금곤은 엊그제 가석방이라는 명목으로 석방되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 묵은해의 고통은 다가오는 희망으로 그 어두운 기억을 잊을 수 있을 것인가?
1992년 새해에는 제반 민주화 조치가 이루어 짐으로써 민주화와 통일로 가는 초석을 다지는 해가 되기를 온 국민과 함께 기대한다.

1991. 12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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