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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우리나라 종교·사회단체의 잠정적 집계에 따르면 1989년 말 현재 우리나라 양심수의 숫자는 1,000명을 웃돌고 새해에 들어서서도 그 숫자는 계속 증가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내일의 이 나라 주인공들인 젊은 학생들, 진보적 지식인들 및 노조관련자들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분석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양심수라는 용어는 보는 관점에 따라 그 정의를 달리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양심수라 하는 것은 범세계적인 국제인권기구인 국제 사면위원회 규약에 따라 폭력을 행사하거나 옹호함이 없이 정치적, 종교적 또느 그밖의 양심에 입각한 신념의 표현을 이유로 세계인권선언조항에 반하여 투옥, 구금되거나 독재적 억압을 비롯한 여러행태의 구속을 받고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는 양심수라는 이름의 죄인 아닌 죄인이 아직도 이 땅에 존재하며 그러한 죄인이 아닌 죄인은 그동안 우리사회에 내재하고 있었던 비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인 정치현실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되어진 희생양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정부마저도 그 개폐를 운위하는 갖가지 악법들이 아직까지도 강제되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려니와 그러한 악법들이 정부나 법원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일관성없이 적용됨으로써 공안정국이니 시국사건이니 하는 낱말들이 통용되는 현실은 필연적으로 양심수의 양산을 초래하여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은 아직까지도 이 나라에도 양심수나 정치범은 존재하지 아니하고 단지 형사범만이 있을 뿐 이라거나 소위 폭력배제의 원칙을 내세워 대부분의 시국사범이나 공안사범들을 양심수로 볼 수 없다거나 사법부가 처벌하기로 한 것을 정부가 석방하기로 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구태의연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우리는 앞으로 이 나라에는 단한 사람의 양심수나 정치범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당위성을 굳게 믿기에 우선 정부당국의 태도에 대하여 몇가지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가 말하는 양심수나 정치범의 개념은 바로 양심수나 정치범이라는 죄목으로 처벌되는 유형의 사람을 뜻하는 거이 아니고 실정법상의 형사범의 형식을 빌어 처벌되고 있는 어떤 유형의 사람을 뜻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지구상 어느 곳에 양심수 또는 정치범이라는 바로 그런 죄명으로 그 국민을 처벌하는 나라가 있겠으며 좁게는 대량구속과 대량석방의 악순환으로 점철된 이 나라 정치상의 와중에서 역대정권들의 단한번이라도 이땅에 양심수나 정치범이 있었다고 시인한 적이 있었는지를 정부당국은 다시한번 숙고해 주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정부가 원용하는 폭력배제의 논리는 바로 정부 발표나 판결문에 나타난 범죄사실만으로는 폭력성 유무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국제시면위원회의 입장에 반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법부 스스로가 사법권의 독립에 관하여 정담을 하지 못하는 마당에 판결문만을 가지고 양심수 여부를 어떻게 가릴 수 있겠는지, 더구나 시국사건이나 공안사건의 구속 또는 재판과정에서 종중하지 않았던 사법권의 독립을 하필이면 석방때만 들추는 것이 과연 일관성이 있는 태도인지를 정부당국은 재삼 숙고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땅의 양심수 문제는 수감자 개개인의 인권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역대정권의 역사적 과오나 정치적 실정의 청산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지난날의 불행하였던 역사적 정치적 상황이 갖가지 명목의 양심수들을 양산하여 왔던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기에 오늘날 양심수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시대적 요구일뿐더러 구시대의 결별과 민주화를 약속하였던 현 정부의 역사적 책무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과거청산 작업을 예의주시하면서 아울러 양심수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한 정부당국의 획기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바이다.
1990. 2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위원장 유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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