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21세기진보학생연합-이적단체규정(3.14대법원 첫공판), 기무사의 위법적 함정수사를 통한 조작된 국가보안법 사건을 밝히겠습니다.
  글쓴이 최정호 글쓴날 2003-03-20 18:36:43 조회 1982

(21세기 진보학생연합 이적단체 규정!! 3월 14일 대법원 첫 판결)

(기무사의 위법적 함정수사를 통한 조작된 국가보안법 사건을 밝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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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민국 육군 장교(중위) 출신 최정호라고 합니다.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국군기무사령부'와 '청주606 기무부대'라는
국가기관이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을 악용하고, 공권력을 남용하여, 깨어있는
민중과 의식 있는 젊은이들의 삶을 무참히 짚밟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입니다. 

 저는 37사단 957포병대에서 전포대장 직책을 수행 중 2002년 2월 1일
국가보안법위반(7조 1,3,5항)으로 구속기소되었으며, 606(청주)기무부대에서
8일간의 수사와 검찰에서의 20일간의 수사후 1심(37사단보통군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2심에서(국방부 고등법원) '선고유예'로 석방이
되었습니다. 

 '장교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니...?'라고 다들 의아해 하기도 했으며,
요즘시기에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이 아직도 있다는 것에 대해 다들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저도 제 사건의 진상(진실)을 모르고 있다가 2002년 4월 18일 육군교도소로
이감 후 '항소 이유서'를 쓰는 과정 606기무부대에서 작성한 수사기록을 보고
제 사건이 기무사 프락치(신관호 중사)에 의해 처음부터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준비된 함정수사였으며, 사건이 왜곡되고 조작된 것이라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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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년 저는 한양대 지구해양과학과에 입학하였으며, 96년 사립대학의 부당한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여 '학내 등록금 투쟁'을 통해 학생회와 학생운동을
접하게 되었으며, 97년 한양대 이과대 학생회장, 98년 한양대 부총학생회장을
역임한바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라는 학생운동
단체에 가입 활동한 사실이 있었으며, 98년 4월 20일경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유예를 받은 사실도 있었습니다. 98년 부총학생회장 시절 학생운동과
학생회 활동을 할 당시 '비폭력 학생운동 제창, 정치성향적·친북주의적
학생운동인 한총련식 학생운동 반대'를 주장하며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NGO활동의 일환으로써 학생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언급하며 '대중들과
함께하는 건전한 학생운동 전개'를 하고자 노력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공안당국에서는 이러한 진보적 운동단체인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을
96년 11월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2000년 1∼3월 장교임관 신원조회 기간에는
전혀 문제제기 하지 않다가 1년 7개월의 군생활을 열심히 하는 과정
'찬양고무죄, 이적단체 가입죄(국가보안법 7조 1,3항)'를 적용하여 구속기소
하였습니다.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은 94년 당시 '진대련','진학련','생대련'이라는 3개
학생운동 단체가 연합하여 구성한 단체로 "친북적,정치성향적,폭력적 운동을
펼쳤던 한총련식 학생운동을 반대하고 비폭력적 학생운동을 제창하며 ngo활동의
일환으로써의 학생운동을 전개"하여 94년 당시에는 중앙일보 사회면에 [새로운
학생운동의 연대체구성-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라는 기사로 사회일각에서
이슈화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96년 공안당국에서는 21세기 진보학생연합 출신 1,2,3기 의장 및
집행위원을 대거 체포하여 구속시킨 후 1심재판에서 이적단체로 규정하였고,
이에 당시 구속기소된 6명(1기의장 이종석외 5인)의 피의자들은 고등법원에
항소하였지만 2심재판을 해보지도 못한체 항소취하되는 웃지 못할 헤프닝도
있었습니다. 이에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은 고등,대법원에 한번도 올라가지
못한채 이적단체로 규정되었습니다.      
 
 또한 군내 이적 표현물을 반입 소지하였고, 병사들에게 배포하였다는 이유로
'이적표현물 소지 및 배포죄(국가보안법 7조 5항)'가 추가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군내 이적표현물 소지 등에 대한 사실은 기무사 프락치 신관호
중사(37사단 포병대 소속)의 주도적 행위였는데, 606(청주)기무 부대에서는
마치 저가 사건을 주도한 것처럼 사건을 왜곡하고, 저가 행하지 않고 신관호
중사(기무사 프락치)가 행한 행동과 말을 마치 저가 한 것처럼 사건을
조작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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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 기무사령부와 606(청주)기무부대, 기무사 프락치 신관호의 함정수사 진행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해 보면,
  
 2000년 1∼3월 '학사 36기' 장교 임관 신원조회 과정 '수원기무부대'
000수사관은 한양대(안산) 학생처 직원 최인찬 선생에게 전화하여, 저의
대학시절 학생운동 경력 및 성향, 98년 '집시법위반' 기소유예 사건에 대한
내용 등을 문의하며 신원조회를 실시하였다고 하며,
 2000년 10월 1일 '학사 36기' '소위'로 임관하자 '국군 기무사령부'에서 저에
대해 추적관리하고,
 2001년 3월 2일 '37사단 957포병대'로 전입을 하자 '606(청주) 기무부대'에서
저를 추적관리 하고자 기무사 프락치 신관호 중사를 저에게 접근시켰으며, 

       (다른 사람에게 행한 신관호의 프락치 행위에 대한 내용)
      1) 2000년에는 저에게 접근한 방식과 비슷하게 37사단 포병대 작전과
계원 병사 김종준 에게도 신관호가 접근하여 운동관련 서적 등을 요구하였으며,
신관호가 언급한 부분을 김종준이 언급한 것으로 왜곡하고 조작하여 이를 통해
김종준 대상 '통신제한조치(도,감청)'를 군판사 허가하에 2000년 10월부터
2001년 5월까지 실시하기도 하고, 
      2) 1999년, 2000년 신관호는 부대내(37사단 포병대) 병사들에게 임수경
방북에 대해 정신교육 시간을 이용 언급시 긍정적 입장을 병사들에게 언급하여
병사들의 성향을 파악코자 하였으며,
      3) 2000년 봄,여름 37사단 포병대 신진원 대위에게는 신관호가 민중가요
노래 테잎(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듣는 모습을 보여주며 신진원대위의
성향을 파악하기도 하며, 신관호 자신이 기무부대에 자신의 고교 선배가 있다고
언급하고, 또한 신관호는 자신이 기무부대에 들어가고 싶다는식의 말을 신진원
대위에게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2001년 3∼5월 신관호가 저에게 언급한 운동관련 내용 및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책에 관한 내용을 마치 김종준과 저가 언급한 것처럼
606(청주)기무부대에서는 사건을 왜곡 시켰으며, 이 왜곡된 자료로 군판사에게
'통신제한 조치 허가장'을 발부 받은 후 2001년 9월부터 2002년 2월까지 저를
대상으로 통신제한 조치를 실시하였습니다.
 2001년 3월 신관호는 37사단 포병대로 전입한 저에게 접근하여 '국가보안법
폐지론'에 관한 신문 기사를 보여주기도 하였고,
 2001년 4월 3일 청주 '삼미파전'이라는 술집으로 불러 운동관련 얘기 등을
저에게 함으로 신관호 자신이 운동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인척 하기도
하였으며, 여러 차례술을 사주며 운동 관련 대화를 하고 운동관련 책을
요구하며, 심지어 '병사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지 않은가'라고 언급하기도
함으로써 함정수사의 일환으로 사건을 주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신관호의
그러한 행위가 위법 행위일 수 있고 지금과 같은 문제(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를
야기 시킬 수가 있다고 여겨 신관호를 말리고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신관호는 함정 수사의 일환으로 저와 개인적으로 절친한 관계를 형성하였으며,

 2001년 6월 30일 신관호는 운동관련 자료 요구 및 제 대학 시절 같이 운동했던
선후배를 만나고 싶다고 하며, 한양대 농활대가 있는 충북 제천으로 같이 갈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으며, 결국 농활 장소로 이동 후 신관호의 요구대로
농활자료 등을 입수하고 제 대학 후배들을 만나기도 하였고
 2001년 7월 신관호의 요구에 의해 군내 운동 관련 서적을 반입하게 되고 
 2001년 9월 위와 같이 신관호가 주도한 사건을 마치 저가 주도한 것처럼
사건을 왜곡하며 또 저가 행한 행동이 아닌 신관호가 행한 행동과 말을 저가
행하고 말한 것처럼사건을 조작 후 군판사의 허가를 받아 저를 대상으로
'통신제한 조치'를 실시하기도 하였습니다. 
 2001년 10월 신관호는 함정수사를 위해 '동아리 활성화 방안 계획안'을 자신이
작성하고 교관 편성을 자신이 자의적으로 편성, 저를 독서반 교관으로 편성하고
독서반을 통해 이적 표현물 배포 및 교육에 대한 혐의를 만들어 보고자 군에
반입된 이적표현믈을 제본하고 제본한 이적표현물을 병사들에게 배포할 것을
요구하고 강요하였습니다.
 2001년 10월 26일 신관호는 평소 절친한 관계인 저에게서 제 핸드폰을 빌려
'37사단 110연대 음성대대 간첩신고단'으로 전화하기도 하였으며, 
 2001년 11월 중순 신관호는 '사단연락 장교 파견'을 저에서 오종준 중위로
바꿈으로써 신관호 자신과 606기무부대에서의 함정수사가 좀더 수월하게끔
하고자 사단연락장교 파견까지 37사단 인사처 인사장교(황인영 대위)를 통해
조작하기도 하였습니다. 
 2001년 8월, 11월, 2002년 1월에는 606(청주)기무부대에서 미리부터 저에 대해
내사를 함으로써 제 대학시절 학생운동 전력 등의 수사기록을 작성하고 
 2002년 1월 25일 신관호는 혹한기 훈련기간을 틈타 606기무부대에 들어가 이번
사건에 대한 진술서를 진실과 다르게 조작하여 작성하였으며,
 2002년 2월 1일 606기무부대와 기무사 프락치 신관호는 저를 구속시키고,
37사단내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하여 저를 간첩내지는 대단한 공산주의
혁명가, 폭력혁명가로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606기무부대에서 2월 1일부터
2월 8일까지 수사 중 신관호에 대해 저가 언급하자 제 담당
수사관(한동설-국군기무사령부 소속)은 신관호에 대해 언급치 말라고 강요와
협박을 일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까지 기무사 관련자(박종민
권사)를 보내 '21세기 진보학생연합 관련 조직사건'을 조작할것을 가족들에게
강요,협박하기도 하였습니다. 
 2002년 2월 4∼7일 신관호는 606기무부대에 들어가 사건을 조작 왜곡하고
 2002년 2월 1일쯤 신관호는 자신의 책상(인사과 내)에 '다시쓰는 한국
현대사'를 방치해 둠으로써 계속해서 또 다른 사건을 조작해 보고자 했으며
 2002년 7월 9일 국방부 고등법원에서의 심리 재판과정 신관호는 증인심문에서
거짓으로 증언을 하고
 2002년 7월 16일 국방부 고등법원에서 심리 재판과정 한동설 수사관 역시
증인심문에서 거짓으로 증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국군 기부사령부와 606(청주)기무부대에서 프락치 신관호를 통한
함정수사를 일삼았던 것은 최근 2~3년간 군내 국가보안법 관련 사범이 없고,
(전)김대중 대통령께서 내세웠던 '햇볕정책' 및 6·15남북 공동성명 이후
국가보안법에 대한 폐지론이 대두되고,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께서 대선후보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까지 언급하자 이에 생존의 위기감을
느낀 '국군 기무사령부'는 자신들의 생존과 실적을 올리고자 군내 장병들 중
과거 학생운동을 경험해 보았던 이들에게 혐의를 만들어 구속시키는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이라 느끼며,
 
 또 신관호의 입장에서 이번 사건을 해석해보면, 
 신관호는 17사단에서 37사단으로 전입(99년 2월) 후 기무부대 소속
고교선배(청주 세광고)를 통해 606기무부대의 프락치로 포섭되고, 이를 통해
37사단 포병대에서 기무부대의 업무를 봐주는 '정보작전 행정관' 직책을
역임(99년 2월∼2000년 10월)하고, 중사 진급후인 2000년 10월 부터 12월까지는
심지어 '37사단 사령부 작전처'에서의 정보작전분야 업무를 맡아본바 사실이
있으며, 이번 사건을 통해 포상 내지는 실적을 올리고, 현재 청주대 법대
야간(2002년 3월 입학)을 다니므로 신관호 개인이 기무부대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신관호의 고교선배를 통한 프락치 행각은 저를 대상으로 했던 것 뿐
아니라 과거 37사단 작전과 병사 김종준을 통해서도 확인가능하며, 그 외 이번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또 다른 증인들의 증언(녹취기록)을 통해서 신관호가
법정에서 철저하게 거짓으로 증언을 한 것을 밝힐 수 있으며, 이와 같은
거짓증언을 한 이유는 신관호가 자행한 행위가 함정수사로써의 프락치
행각이었다는 것을 숨기고, 심지어 사건을 조작·왜곡했다는 것을 은폐시키고자
한 행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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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6·70년대나 21세기인 현재나 모두 국가의 안위와 안보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이 자행하는 민중탄압과 진보세력에 대한 억압 착취는 변한 것이
없다고 보여지며, 아직도 법을 악용하고 공권력을 남용하여 자신들의 신리
추구와 실적을 위해 의식 있고 깨어있는 민중을 압살하는 그들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민중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기에 학생운동을 했고, 조국을 사랑하기에 장교의
길을 택했으며, 사랑하는 조국의 미래를 염려했기에 병사들에게 철학적 가치관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기무사와 그 프락치 신관호는 과거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함정수사를 통해 혐의를 만들고, 사건을 조작, 왜곡하기까지
했습니다. 더 이상 저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지켜볼 수 없으며, 지난
2002년 7월 24일 육군 교도소에서 6개월간의 구속 수감생활을 마치고 석방이후
이번 사건과 관련된 증인들을 만나 신관호가 기무사의 프락치였다는 것과
신관호가 2심 법정에서 거짓으로 증언했다는 것,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것 등의 내용을 입증할수 있는 증인들의 증언(녹취기록)을
확보하였으며,
 이후 2002년 8월 12일 대법원에 상고하고 2003년 3월 14일 대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상고기각되어 선고유예 형이 확정되었습니다.  

 모든 사건의 진이 여부와 진실을 밝히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자 준비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기무사에서는 자신들의 위법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 모든 사건을 은폐하려고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양심을 가진 대한민국 청년으로써 더 이상 국가기관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자행하는 인권유린 행위를 용서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의 안위와
안보를 담당한다는 국군 기무사령부와 606기무부대의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을
온 천하에 폭로하겠습니다. 

2 0 0 3 년   3 월   19 일 
작 성 자 : 중 위  최 정 호(011-9244-2210)


Re: 국가보안법 철폐 결사 반대
정세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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