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발언대>
'주적'과 '보조적'의 모순
정부가 최근 임동원 특사의 방북을 계기로 맞게 된 남북관계의 해빙무드
를 정착시키는 뜻에서 그 동안 <국방백서>에서 사용해온 `주적은 북한'이
라는 표현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
다.
지난 1988년 이래 매년 국방부가 발행해온 국방백서에 `주적'이라는 표
현이 들어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냉전체제가 해체되고도 한참 뒤인 1995
년부터다. 판문점 남북특사회담 때 박영수 북쪽 대표의 `서울 불바다'발언
이 도화선이 됐고 이것이 후에 국회에서 논란을 빚으면서 대북 경계 차원
에서 그러한 표현이 국방백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현재 유엔 가입 회원국만 190여개에 이르지만 그 나라 국방의 기본계획
을 밝히는 `국방백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나라는 10여개국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해마다 국방백서를 발간하는 나라는 미국, 일본, 한국 등 극소
수에 지나지 않는다.
`국방백서'는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공식적인 국가문서인 관계로 통상 `
선린우호'정책을 강조하면서 유사시 자국의 국토방위를 위해 철저히 대비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져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아무리 안보상황이
어렵다하더라도 “우리의 적은 XX이다”라는 표현은 피하는 것이 국제관
례이다. 중국의 위협 아래에 놓여 있는 대만이나 아랍권국가들로 둘러싸여
있는 이스라엘도 특정국가를 주적이라고 지목하지는 않는다.
군이 국가의 간성으로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보위
하는 신성한 임무를 지는 것으로 족하지 무슨 `주적(主敵)'이 필요하고 `보
조적(補助敵)'이 필요하단 말인가. `보조적'(?)이 쳐들어오면 손놓고 가만히
있자는 것은 더 더욱 아니지 않는가.
주적개념은 전시상황에서 군의 작전개념이지 남북이 정상회담을 열고 국
방장관회담까지 하는 화해·협력의 무드의 평시에는 어울리지 않는 용어이
다. 따라서 1992년 발효한 `남북기본합의서'와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적'이라는 말을 국방백서에서 고집할 필요가 있겠는
가를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국방백서에 `북한이 주적'이라는 표현을 넣어야 국방이 된다면 휴전 이
후 42년 동안 그런 말이 없었어도 군의 국토방위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주적' 표현을 삭제하거나 수정한다고 할 경우 어떠한 대안이 바
람직할까. 요컨대, `국방백서'상 국방의 목표는 94년도 당시의 국방백서로
돌아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곧,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
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는 표현이면 모든 상황을 포괄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국방을 논할 때 `물 샐 틈 없는 방어'를 강조한다. 또한 안
보를 이야기 할 때 0.1%의 방심도 금물이라고 말하곤 한다. 우리 군이 그
와 같은 전천후 방어태세를 갖추어 나갈 때 명실상부한 국방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유사시 `주적', `보조적' 가려서 대응한다는 뉘앙스를 만에 하나라
도 풍겨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이와 함께 `국방백서'의 발간주기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같이
세계를 경영(?)하는 초강국의 입장에서는 해마다 발간하는 것이 의미가 있
을지 모르나 우리와 같은 지역국가가 별 다른 상황변화도 없이 매해 내용
이 비슷한 백서를 발간하는 것은 생산적이지가 못한 면도 있다. 독일 등
일부 나토 동맹국들처럼 3~5년의 주기로 발간하거나 선거에 의해 새로운
대통령정부가 들어섰을 때마다 발간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상당수의 유엔 가입국들은 `유엔무기등록제도와 `군사비보고제도'를 통
해 `국방백서'가 포괄하는 핵심부분의 내용을 공개하고 있고 미국, 영국,
스웨덴의 국제안보 관련 기관에서도 주요국의 국방태세를 주기적으로 취
합·정리하여 발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수/ 명지대교수·국제정치학
